본문 바로가기
2024년

<나귀와 말 — 권총과 족구>(2018) 책 리뷰

by nomaddamon 2024. 5. 19.

사무소 책장에 꽂힌 책 제목이 시선을 끌었다. <나귀와 말 — 권총과 족구>. ‘대외원조 1세대의 원조 최전선 이야기’. 이 책이 스스로를 소개하는 문장이다. 예전에 어떤 심리학 연구를 읽었다. 타인과 소통하고 감정을 나누며 '집단 지식(collective knowledge)'이 형성된다. 이는 집단의 소속감과 신념으로 발전한다. 그래서 소통하고 감정을 나누는 집단이 트라우마에 강하다(resilient). 집단의 힘은 물리적인 데에서도 나타난다. 조정(rowing) 선수들은 노를 혼자 저을 때 보다 팀으로 저을 때 두 배까지 고통을 견딘다. 한편, <세계의 절반 구하기>에서 이스털리는 원조(aid) 계획가가 풍요를 가져오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를 이렇게 말했다. "역사적 기억의 부족은 사람들이 실수를 통해 배우지 못하도록 한다." 나는 그 심리학 연구와 이스털리의 지적에 공감했다. 그래서 기회가 되는대로 동료들이 일하면서 품는 환희와 절망을 듣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대화를 나누기는 쉽지가 않다. 속 깊은 얘기를 나누기에 일터는 너무 바쁘고, 동료들을 일터 밖에서 만나긴 쉽지가 않으니까. 그러던 차에 <나귀와 말 — 권총과 족구> 라는 책을 발견해 반갑고 기뻤다.

 

책은 저자가 KOICA 직원으로 이라크, 베트남, 중국, 태국에서 겪고 느낀 것들을 다룬다. 241 페이지 책에 스물다섯 꼭지가 들어있으니, 한 꼭지당은 10 페이지 이내다. 재미있는 책이고, 가르침을 주는 책이며, 귀중한 사료(史料)다. 스스로가 부끄럽기도 하다. 동료들의 환희와 절망이 궁금하다고 하며, 정작 왜 나는 이 저자처럼 내 환희와 절망을 남기지 않았는가. 누워서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양 어느날 기적처럼 동료들이 내게 술술 말하고 나도 동료들에게 술술 말하는 날이 오기만을 희망했는가. 회사를 다니며부끄러운 순간은 자주 있다. 몇년 전부터 부쩍 그렇다. 본인이 추가 품을 들여서라도 조직에 기여하는 선배들을 보며 부끄럽다. 후배들이 내는 새로운 아이디어는 회의감부터 들고, 스스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지 못하는 내가 부끄럽다. 그래도 내 사무소 임기가 조금 남아있을 때 이 책을 발견한 게 행운이었다. 나는 남은 임기 동안 내가 겪은 환희와 절망을 기록하고, 동료들과 나눌 것이다. 

 

책 제목에서 ‘나귀와 말’은 이솝우화의 나귀와 말이다. 나귀가 자기 짐 좀 들어달라 했는데 말은 거절한다. 결국 나귀는 죽고 말은 나귀의 짐까지 모두 지게 된다. 저자가 생각하는 공여국과 수원국의 관계다, 개발원조에서 득을 보는 것은 수원국 뿐이 아니라는. 우리나라와 베트남의 관계가 이에 딱 맞는 사례일 것 같다. 한국이 베트남 전쟁에 파병했던 과거와, 개발원조를 제공하고 있는 현재, 둘 중 어느 시대가 한국과 베트남이 더 잘사는 시대인가. 저자는 베트남의 마을에서 한국에 대한 증오도 마주했다. ‘당신들이 쏜 총에 맞은 상처’를 내보이는 주민도 있었다. 다행히 지원사업이 끝나갈 무렵에는 마을 사람들의 증오는 환영으로 바뀌었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하니, 개발원조를 통해 남은 원한도 계속해서 치유되면 좋겠다. 2023년말 기준 한국은 코이카를 통해 베트남에 6억달러를 지원했다. 베트남 전쟁 중 한국의 대미 수출은 파병 이전인 1964년 3500만 달러에서 한국군 파병이 시작되는 1972년 7억 5900만 달러로 증가했다.

 

‘권총과 족구’에서 권총은 아슬아슬한 이라크의 치안 상황을 상징하고, 족구는 그 상황 속에서도 존재하는 망중한(忙中閑)을 상징한다. 내가 있는 피지는 이라크에 비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치안상황이 생활에 제약을 준다. 해가 지고나면 걸어서 나다니기 어렵고, 대낮에 갈취를 당하는 한국인 소식도 이따끔씩 듣는다. 거의 대부분 차로 이동하니 좀이 쑤신다. 이라크에서 저자는 오죽 했을까 마음이 이해된다. 차 안에 웅크려 있다가 테니스 코트에 가 공을 뻥뻥 치면 속이 후련하다. 저자가 족구를 할 때도 이런 기분이었을 것이다. 

 

세상만사 상관 있다고 생각하면 상관이 있고, 무관하다 생각하면 무관하다. 시간은 겹치지 않았지만 저자와, NGO에서 근무했던 나, 봉사단원이었던 나, 피지 사무소에서 근무하는 나,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NGO 단체의 직원들에게도 정당한 대우를 해줘야 한다. 그들도 개발협력에 헌신하는 봉사자이기 이전에 생활인이기 때문이다… 회비를 쥐어짜듯 아껴 쓰는 일보다는 전문성을 가지고 개도국 현장에서 성과를 내는 것이 NGO 단체가 진정으로 회원들에게 보답하는 길이 아닌가 싶다.’ 라는 대목을 읽으면서, NGO에서 근무하던 내 과거가 떠올랐다. 화장실 천장에 물이 새 한 손으로는 휴지로 머리를 가리고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던, 매주 금요일마다 직원들이 직접 사무실 대청소를 하던.  

 

‘봉사활동하면 아직도 희생과 헌신을 강조하고 심지어 강요하는 사람들이 있다… 희생과 헌신과 헌신만을 강요하기는 무리이다… 봉사활동을 오랫동안 꿈꿔온 타고난 봉사자도 있는가 하면,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 스펙을 쌓기 위해서, 경험을 쌓기 위해서, 더러는 사업 기회를 엿보기 위해서 지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돈이 없는데 봉사활동 마치면 석사과정 진학 시에 장학금을 준다고 해서 지원했다는 솔직한 젊은이도 있었다.’ 대목을 읽으면서는 내 단원 시절이 생각났다. 나는 동의한다. OECD DAC의 GNI 대비 ODA 비율 목표가 0.7%다. 삶의 0.7%만 봉사에 써도 충분한 봉사다. 

 

우리에겐 일상, 그들에겐 꿈속의 호사 Aid worker 음식이란 꼭지 제목에선 지금의 나를 느낀다. 얼마 2002 영화 <YMCA 야구단> 봤다. 조선 배경이다. 불과 120 우리다. 주인공 호창이 (정확히는 돼지오줌보) 남의 담을 넘어가자, 호창은 공을 찾으러 담을 넘는다대문을 두드리고 들어가면 될것을. 뒤로 반복적으로 담을 넘어 들어간다. 선교사의 야구글러브를 몰래 만져보기도 한다. 정림의 친절을 애정으로 생각해 무턱대고 비장한 연서를 쓴다. 야구단 남성들은 외국인 선교사는 존중하나, 여직원 정림은 깔본다. 호창의 아버지는 명륜동에 학이 날아오지 않는 원인을, 변절한 선비들이 많은 때문이라 진단한다. 사람들은 겨울에 강물을 톱질해 캔다. 아들은 아버지 앞에 앉을 무릎을 꿇고 앉는다. 120 우리는 이렇게나 달랐다. 개인의 행동이 시대 상을 벗어나기란 얼마나 어려울지 짐작할 있다. 나보다 똑똑한 피지인 동료들을 보며 애가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