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인들과 모여 함께 설을 쇘다. 점심에 모여 음식을 준비하며 시작해, 윷놀이를 하다가, 고스톱을 치다가, 술을 마시다가 헤어졌다. 어느 순간 지인들과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보면 기시감이 든다. 어릴 적 부모님이 지인들과 보내던 방식으로 내가 내 지인들과 시간을 보내는 걸 자각해서다. 비단 지인들과 시간을 보내는 방식 뿐은 아니다. 어느 결에 어릴 적 부모님이 날 데려갔던 장소들로 아내를 데려가고, 등교 시 부모님과 나눴던 것처럼, 출근하며 아내와 포옹을 나눈다. 성인이 된 후 이뤄지는 내 삶의 개척도 부모님이 구축해 준 영역에 한 발을 딛고서 이뤄질 뿐이다.
2.
상상력만큼 산다. '상상력' 이란 말을 들으면 나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영화를 봤던 경험이 생각난다. 초등학생 때였다. 책 읽을 땐 도대체 어떤 풍경이라는 건지 상상하지 못했다. 그 호그와트 풍경이 스크린에 비춰질 때, 나는 감탄했다. 그 때의 흥분을 생각하면 비슷한 시기에 학교에서 읽었던 지문도 생각난다. 영상매체와 활자매체를 비교한 지문이었다(대략 이런 식). 활자매체는 독자로 하여금 상상하게, 능동적으로 수용하게 하는 매체이지만 영상매체는 떠먹여주는, 수동적으로 수용하게 하는 매체란 내용이었다. 내겐 별로 와닿지 않았다.
3.
얼마 전 CES 2024가 끝났다. 나는 Sony의 캐치프레이즈—Powering Creativity With Technology—가 가장 뇌리에 새겨졌다. VR 기술을 활용해 가상 환경에서 영화 제작을 먼저 해보고 그 다음 실제 영화 제작을 착수하게 한다는 소개가 있었다. 나는 연습장을 쓸 수 있을 때와 없을 때 수학 문제 풀이 능력에 큰 차이가 있었다. VR 기술이 창의력에 있어서 연습장처럼 기능하진 않을까? 분명 VR은 활자매체가 아니다. 영상매체에 가깝다. 궁금하다. 요즘 초등학교에서도 활자매체가 더 깊이 있고, 영상매체는 피상적이라고 가르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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