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한계
이 글은 로스앤젤레스와 텍사스를 고대 아테네와 스파르타에 비유하여 현대 미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가치 충돌을 조명하고자 한다. 그러나 고대 도시국가와 현대 연방체제 내 도시·주(州) 간의 구조적 차이는 물론, LA와 텍사스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정치·문화적 스펙트럼이 충분히 고려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즉, 하나의 상징적 대비(“아테네 vs. 스파르타”)가 각각의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할 수 있으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 내부의 복합성 역시 주목해야 한다.
로스앤젤레스: 현대의 아테네
로스앤젤레스는 진보와 혁신, 그리고 창의성의 상징이다.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캘리포니아 전역에서 발달한 첨단 기술·스타트업 문화가 결합하여, 고대 아테네가 꽃피웠던 문화와 사상적 풍요를 떠올리게 한다.
미국 내에서 캘리포니아(인구 약 4,000만 명)는 세계 5위 규모 경제(약 3조 달러 GDP)를 자랑하고,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한 엔터테인먼트·첨단기술 산업이 번성함으로써 전국적 이미지를 주도한다. 그러나 고대 아테네가 이상적 민주주의를 표방했음에도 시민권을 제한하고 노예와 거류민을 배제했던 것처럼, 로스앤젤레스 역시 이민자·빈민층의 정치적 영향력이 미미하고, 빈부격차와 홈리스 문제 등 심각한 사회 갈등을 안고 있다.
진보 도시로서 로스앤젤레스는 시민들에게 무료 문화생활을 적극 제공한다. 하지만 그 무료 프로그램은 하위층에게는 만족을 주기보다 분노를 유발하기도 한다. 이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실질적 소득과 유급 노동이지, 일시적으로 즐길 수 있는 문화생활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상 문화 프로그램 자체가 하위층에게는 실질적인 이익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구조적 요인이 존재한다. 문화적 자산을 응용해 자신의 부를 창출하거나, 인맥을 형성해 더 많은 자원을 끌어올 수 있는 사람은 이미 교육과 경험을 충분히 제공받은 상류층인 경우가 많다. 반면, 생계를 위해 장시간 노동에 매달려야 하거나, 교통비조차 부담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는 빈민층은 이러한 문화 혜택을 ‘사실상 활용’하기가 어렵다. 이것이 진보사회에서 하위층이 배제되는 단면이다.
텍사스: 현대의 스파르타
텍사스는 스파르타를 연상시키는 강한 전통·공동체 의식, 그리고 보수적 정치 문화를 자랑한다. “작은 정부”와 개인의 자유(총기 소유 권리 옹호 등)를 강조하며, 강인한 자율성과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두드러진다.
스파르타가 강력한 군사적 전통과 자급자족적 경제를 통해 외부 영향력에 대한 방어 기제를 높였던 것처럼, 텍사스(인구 약 2,900만 명)도 에너지(석유)·농업 기반이 강하고, 최근에는 오스틴 중심의 첨단기술 산업이 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외부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보수적 태도를 유지하는 편이다.
캘리포니아와 대조적으로, 텍사스는 “낮은 세금, 낮은 서비스, 낮은 규제” 정책을 추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텍사스 헌법은 주(州) 차원의 소득세를 금지하고 있으며, 정부 지출 역시 상대적으로 적다. 그런 만큼 텍사스 공화당 진영에서는 **“Don’t California my Texas”**라는 구호를 적극 내세워, 캘리포니아식 고세율·고규제 정책이 텍사스로 이식되는 것을 경계하기도 한다. 이는 텍사스가 자신의 정체성을 “작은 정부”와 “가장 최소한의 규제”로 확립하려 한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가치 충돌의 심화와 ‘문화적 내전’의 위험
로스앤젤레스와 텍사스는 지리적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고, 정치·문화적 성향 면에서 극단적으로 대비된다. 이전에는 이러한 차이가 미국 사회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지표로 여겨지곤 했지만, 최근 몇 년간 선명해지는 이념적·정치적 양극화 속에서, 이 차이가 미국의 사회적 균열을 더욱 깊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도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단순한 경쟁 관계를 넘어,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대표되는 대규모 충돌로 치달았으며, 이는 수많은 인명 피해와 내부 분열을 야기했다. 오늘날에는 군사 충돌 대신 문화적 내전이라는 형태로, 즉 제도·매체·문화 전 영역에서 갈등이 확대될 수 있다. 서로 다른 가치를 고수하는 집단 간 공감이나 타협의 여지가 사라진다면, 오히려 분열과 적대가 고착될 위험이 높아진다.
특히 미디어와 SNS가 발달한 현대 환경에서, 아테네(로스앤젤레스)적 가치와 스파르타(텍사스)적 가치가 날카롭게 맞설 때, 상대를 ‘이해 대상’이 아니라 ‘거부 대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강화된다. 이는 국가적 통합은 물론, 지역 간 교류나 협력을 가로막고, 나아가 사회 전체가 “서로를 적대”하는 구조로 갈 수 있음을 시사한다.
‘현대의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주는 경고
로스앤젤레스와 텍사스가 보여주는 극단적인 대조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대립이 단순한 역사적 흥밋거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에도 재현될 수 있는 위험임을 시사한다. 양측이 서로의 가치를 극도로 배격할수록, 미국 사회는 더 깊은 내부 분열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히 진보 도시와 보수 지역 간의 갈등이 극단화되는 현상은, 단순히 “정치 성향의 차이”를 넘어, 지역의 실제 삶과 경제적 기반, 공동체 문화 전반에 걸친 균열을 가져올 수 있다. 빈부 격차나 규제·복지 이슈, 총기 문화처럼 해결이 시급한 문제들이 “상대 진영을 비판하기 위한 도구”로만 소비된다면, 결국 해결의 실마리는 더욱 멀어질 뿐이다.
그렇기에 “현대의 아테네(로스앤젤레스)와 스파르타(텍사스)”라는 상징적 대조는, 한편으로는 양측의 다른 이념과 가치를 선명히 드러내지만, 동시에 극단적 배격이 초래할 심각한 분열을 경고한다. 진보가 진정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무상으로 제공되는 문화 혜택을 ‘실제로 누릴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는 등 하위 계층이 경제적·교육적 기반부터 다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반대로, 보수를 지향하는 지역이라 해서 ‘다른 가치’를 가진 집단을 일률적으로 적대시하기보다, 변화가 불가피한 영역이 무엇인지 선제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
결국, 단순한 차이를 넘어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고, 복잡한 갈등 요인을 인식한 뒤 해결책을 모색하려 할 때, 비로소 이 대립 구도는 ‘새로운 미래’로 이어질 가능성을 갖는다. 고대 그리스가 보여준 도시는 결국 서로를 파멸시키는 길로 갔지만, 현대 미국은 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이 여기에 달려 있다.
California and Texas have different visions for America’s future
Alexandra Suich Bass asks which works better
www.economis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