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 칸다부 섬(Kadavu)
새벽 다섯시.
해 뜨는 거 보러 나갈까. 아니, 침대 빠져나오기란 어렵다. 쭉 자려다가 낯선 새소리를 듣는다. 침대를 기어 나온다. 새를 그렇게나 좋아하진 않는다. 일전에 돌로이 수바를 갔다. 아침에 왔으면 여러 새를 볼 수 있었지만 낮에 갔기 때문에 한 마리도 못 봤다. 그때 허탕 친 아쉬움이 오늘 이른 새 찾기의 동력이다. 발견한 새는 ‘Whistling Fruit Dove’ 라는 작은 새였다. 이 섬에서만 볼 수 있는 새라고 했다. 잠깐 삼십분 정도 울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새들도 떠나고 나도 산책이나 하고 들어가려 했다. 먼 발치 리조트의 개들이 보였다. 아직 덜 큰 하얀 개들. 겁이 많아 조금만 가까이 가도 관목 아래로 들어가 버린다. 개들도 겁이 많고 게들도 겁이 많다. 리조트 부지 전반에 구멍이 숭숭 뚤려 있다. 랜드크랩 서식지다. 멀리서 보면 랜드크랩이 슬금슬금 움직이는 걸 볼 수 있다. 사람이 까딱 하면 게 눈 감추듯 구멍으로 들어가 버린다. 결국은 식사 테이블 위에서 만난다.
바닷가에는 바람이 분다. 소금 냄새, 흙 냄새, 그리고 나무에서 떨어져 으깨진 과일 냄새가 난다. 과일 냄새를 맡으니 배가 고프다. 초저녁부터 자서 그런 것 같다. 리조트가 위치한 섬은 인터넷과 무선 통신이 안 된다. 저녁 먹고 방에 들어오면 할 게 없다. 노래만 듣는다. 김장훈은 노래만 부르고, 문샤이너즈의 검은 바다가 나를 부른다. 페퍼톤즈의 노래가 불빛처럼 달리고, 안타깝지만 갤럭시익스프레스의 시간은 간다.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내 마음만 무던히 흐른다.